순수한 영혼의 시인
-황금찬 시인을 추모하며-
윤채원 시인
2017년 4월 8일, 꽃 같은 봄날이 시작되었고 익숙했던 한 계절이 사라지는 것처럼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이 있다.
향토적인 정서와 기독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오랜 시간 시를 쓰셨던 황금찬 선생님의 시에는 지적 성찰이 담긴 작품들이 많았다. 강원도 속초가 고향인 시인은 ‘동해안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곳 도봉구에서도 꽤 오랜 시간 거주하셨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 강원도 횡성으로 내려가 지내셨다.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무르다 바람처럼 떠난 황금찬 시인을 추모하는 글을 청탁받았지만, 다시 차오르는 헛헛함에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1918년생으로 1953년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뒤 지난 60여 년 동안 8,000편이 넘는 시와 수필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거대한 시인의 타계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고 한동안 가슴 한쪽이 먹먹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장례식이 진행되는 서울성모병원에 달려갔고 그곳에서 선생님의 마지막 영정사진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분의 시“꽃의 말”을 가만히 입속으로 암송해보았다. 몇 장의 꽃잎처럼 짧은 이 시는 누구에게든 꽃처럼 고운 말을 건넸던 다정한 선생님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었던 시인의 마음을 꼭 닮은 시였다.
꽃의 말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아라
그래야 말도
꽃같이 하리라
사람아
(꽃의 말 전문)
황금찬 선생님과의 처음 인연은 13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단의 새까만 무명의 후배로 선생님과 만나 이따금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분과 같은 지역에 살면서 처음 뵙게 된 것은 도봉의 향토 시인 이생진 시인을 통해서이다. 선생님이 오래 거주하시던 우이동 청한빌라 근처 작은 찻집에서 이생진 시인과 더불어 몇 번 차를 마시는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선생님이 소장하고 계신 책을 지역에 기증하는 문제로 관내 공무원과 선생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지금도 처음 선생님 댁을 방문하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방문 허락을 요청하는 전화를 드렸는데 직접 전화를 받으신 선생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며칠 후 며느님과 손녀 따님의 안내를 받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서재를 대신한 안방은 사면이 높게 수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시인의 낡은 책상을 보며 오랜 기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앉아 시를 써오신 선생님의 뒷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문제로 책 기증 문제는 불발되고 말았지만, 그날 당신의 시집에 정성스레 서명 해주신 시집 몇 권을 선물 받고 행복했다. 그런 인연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 행사에 선생님을 모시고 다녔던 일들은 내 일생에 귀한 추억이 되었고 지금도 내 심상을 자극하고 있다. 그 다정한 인연에 두께를 더해 선생님은 나의 첫 번째 수필집 <토닥토닥>에 짧은 축하 글을 써 주셨으니 내게는 잊지 못할 인연이며 행운이다. “수필집을 구름에 담아 은하 물에 띄우려 하는데 잎과 꽃이 아름답게 하늘에 피기 바란다.”라는 축하의 말씀을 꽃잎처럼 풀 바람에 날려 주셨다.
특히 지금도 잊지 못 하는 일은 오래전 우리 지역의 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에 선생님이 추천되셨는데 끝내 사양하시고 후배 시인에게 양보하신 일이다. 문단에서의 위치와 수많은 시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셨지만 지역의 문단에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무슨 문학상이냐며 고사하신 일이 아직도 내겐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신앙인으로 사셔서 그런지 세상의 것에 욕심내지 않았고 문단의 여러 감투를 사양했던 선생님이 유일하게 받은 것이 바로 박목월 시인의 유지로 세워진 ‘해변 시인학교 교장’ 이었다. 선생님이 오랜 시간 해변시인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것은 바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밤하늘의 별과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하기 위해서였다고 짐작한다.
100년의 긴 시간 동안 아픈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선한 눈빛을 잃지 않고 기독교 사상에 우뚝 서서 서정성과 현실에 대한 성찰을 시로 노래하며 이 세상을 사랑한 진정한 시인이었다. 시인이 지나온 100여 년의 시간과 그의 삶이 잘 투영된 수천 편의 시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으니 우리는 영원히 그를 꽃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시인으로 기억할 수 있다. 시인은 가고 없지만, 그가 노래한 아름다운 시들은 남아있기에 영원히 우리 안에서 꽃이 되고 고향이 되고 바다가 되고 별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특히 아꼈다는 고운 시 ‘별과 고기’를 소개하며 우리 시대의 꽃같이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의 시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내려놓는다.
별과 고기
-황금찬-
밤에 눈을 뜬다
그리고 호수 위에 내려앉는다.
물고기들이 입을 열고별을 주워 먹는다.
너는 신기한 구슬고기 배를 뚫고 나와 그 자리에 떠있다.
별을 먹은 고기들은영광에 취하여구름을 보고 있다.
별이 뜨는 밤이면밤마다 같은 자리에내려앉는다.
밤마다 고기는 별을 주워 먹고 별은 고기 뱃속에 있지 않고먼 하늘에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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