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鏡止水를 그리며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벽시계를 바라보니 이제 막 새벽 세시를 넘긴 듯싶다. 피곤함을 핑계로 잠을 청해 보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져 온다.
몇달 전 초여름의 문턱에서도 진한 아카시향에 취해 담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던 기억이 낯설지 않다.
지금 내가 잠들지 못하고 새벽을 맞이하는 것은 그 향기와는 사뭇 다른 어제 전해 받은 소포 때문이다. 낯익은 이름이 적힌 작은 상자였다. 그것을 보낸 친구와는 어제 아침 안부전화를 나누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조심스레 뜯어보니 작은 손거울이 새색시마냥 수줍게 웃고 있다. 그 옆엔 아이들 노트를 아무렇게나 찢어 몇 자 적어 보낸 메모에서 사랑이 가득 묻어난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한다. 5일장에 열무 팔러 나갔다가 네 생각에 큰 맘 먹고 하나 샀단다. 비싼 것이 아니라 미안해.” 그 메모가 가슴이 싸해지며 불현듯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스무 살을 겨우 넘기고 고향 근처로 시집가 힘들게 농사지으며 어른들을 모시고 살고 있는 그녀는 나와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따금씩 고구마와 감자, 버섯 등을 택배로 보내주는 성의가 고마워서 몇 권의 책과 아이들 옷가지를 보내주는 것으로 그 답례를 대신하곤 했었다.
뒤늦은 생일 선물인 그 거울을 보자니 기쁨에 앞서 검게 그을린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젠가 친정에 다니러간 길에 만나서 고단한 일상을 이야기하던 중 구릿빛 피부가 마음에 걸려 가방 속의 선크림을 내밀었더니 일어나면 세수도 못하고 밭으로 나가기 바쁘다며 극구 사양하던 그녀였다. 그러고 보니 거울은 지극히 여성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밭일에 지친 어머니도 저녁상을 물린 늦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거울 앞에 앉으시고 나이 든 할머니조차도 남에게 곱게 보이고 싶어 자주 거울을 보는 법이다.
거울은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데 쓰는 물건이다. 또한 혼자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숨긴 것을 드러내 치유 받게 하는 도구가 된다. 겉모습 뿐 아니라 내면의 모습까지도 비쳐 볼 수 있는 거울을 시골 어른들은 ‘색경’이라고도 불렀다.
예전부터 사람들 가까이 있어 온 거울에는 어떤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도 했다.
우리나라 무당들은 칼, 방울들과 함께 거울을 무구로 널리 사용했다. 거울을 이용해 헤어진 사람이나 잃어버린 물건들의 소재를 점치기도 하고 길흉을 알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거울과 마법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세계 여러 곳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백설공주 이야기 속의 ‘신비한 거울’은 계모가 쓰는 마법 도구였다. 중국인들은 귀신을 쫓기 위해 윤을 낸 놋쇠 거울을 문에 붙여 놓았다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 도망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 청동 거울을 사용해왔다. 최초의 현대식 거울은 7835년 유스투스 폰 리비히라는 사람이 유리 표면에 화학적으로 은을 입힘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거울은 외모 뿐 아니라 내면을 비쳐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맑은 거울을 일컫는 명경(明鏡)을 사람의 맑은 본성이라고도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일 게다.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비유해 명경지수라고 하는 까닭이기도하다.
니체의 작품에 나오는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떨려서 소리쳤다고 한다.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것은 현자라고 믿는 자신이 아니고 악마의 험상궂은 얼굴과 조소에 찬 눈초리였기 때문이다. 초인이 되기 위해 동굴의 고독 속으로 되돌아가 때를 기다리던 그의 예지는 성장하여 풍요함으로 가득 찬 그에게도 아직 벗어나지 못한 괴루움이 있었던 탓일까. 그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들은 듯싶다.
친구가 보내준 거울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 또 다른 내가 보이며 내게 왜 거울을 보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평소 기복이 심한 나에게 그것을 보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는 것이지 지레 주눅이 든다. 그 순간부터 거울은 늘 나와 함께 하며 내 행동을 그려주는 그림자가 되었다. 마음속에서 갈등이 생길 때나 분노와 이기심이 앞설 땐 조심스레 꺼내 들여다본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니 선한 친구가 곁에 있는 한 나도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금 고단한 일상이지만 늘 진실 되고 밝은 모습을 간직한 친구가 또 다른 내가 되어 지켜보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내일은 안부전화 대신 예쁜 편지지에 고마운 마음 가득담아 오랜만에 긴 편지를 써 보내야겠다.
'윤채원의 문학세계 > 수필.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두나무 (0) | 2013.03.24 |
---|---|
달팽이처럼 살아가기 (0) | 2013.03.24 |
<윤채원의 토닥토닥>-에세이집 (0) | 2013.03.23 |
바람이 분다. (0) | 2011.10.11 |
그녀의 첫 경험 (0) | 2010.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