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찾아가는 인권세상] 한국의 간디, 그의 자취를 밟다 <함석헌기념관> 나의 관심정보
작성자: 새벽풍경(mhyoo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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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그 주요한 역사적 순간을 관통하며 서있던 이가 있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시인으로, 교육자의 눈에는 교육자로, 사상가의 눈에는 사상가로, 언론인의 눈에는 언론인으로, 역사가의 눈에는 역사가로 보이는 '만물상' 같은 인물, 함석헌. '한국의 간디'라고도 불리는 그의 자취를 따라 <함석헌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함석헌기념관>은 한적한 주택가 속에 고요하게 자리해 있습니다. 활짝 열려진 대문 너머 기념관은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2015년 개관한 <함석헌기념관>은 실제로 그가 말년을 보낸 생가를 개조해 만들어졌는데요. 생전 그가 추구했던 정신과 사상을 반영해 지상 1층은 전시실로, 지하 1층은 커뮤니티 공간과 도서열람실, 씨알갤러리로 꾸려집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조화롭게 호흡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죠.

현관문을 열고 전시실로 입장하려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영락없는 일반 가정집처럼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이색적인 느낌을 줍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마련된 작은 전시 공간. 그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함석헌 선생이 직접 사용하던 유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습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새하얀 도포와 신발, 지팡이가 눈에 띠네요.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1989년 작고할 때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로 다양한 삶을 살다간 인물입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 당한 경험은, 이후의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1938년, 오산학교 사임 전까지 민족주의, 무교회주의 등에 사상적 영향을 받으며 역사 교사와 언론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글의 힘을 잘 알고 있던 함석헌. <사상계>, <씨알의 소리> 등 광복 이후에도 이어진 문필 활동으로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견고히 다지며 '싸우는 평화주의자'로서 불의에 항거합니다. 1958년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글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하죠.

평소 간디를 존경하던 그는 동서양을 막론, 여러 고전을 섭렵하며 그것을 자신만의 사상으로 소화했습니다. 그가 제창한 '씨알사상'은 민(民)이 근본이 되어 비폭력, 민주, 평화를 골자로 하는 개념이었는데요. 말년에는 시를 쓰기도 하며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는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씨알은 외롭지 않다'. 소전시실을 나오면 그의 다사다난했던 생애가 기록된 연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89년, 향년 89세의 나이로 작고한 그는 후반기에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수차례 투옥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해 노력했죠.

"군림은 하지만 통치는 아니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참 좋은 군주는 그래야 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 시대에, 나라의 주인이 민중이라면서 민중을 다스리려 해서 되겠습니까?" -제5공화국 시절, 한 인터뷰에서

한편, 생전에 화초를 그렇게 좋아했다던 그의 숨결이 지금도 기념관 앞뜰에 고스란히 남아있는데요.

함석헌 선생이 직접 키우던 꽃과 나무들은 물론, 기념관 전체를 관리하며 관객을 맞이하고 있는 윤채원 작가의 정성이 이 곳의 깊이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이름 모를 동네 주민이 걸어놓고 간 화분에서 이 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러자 다시금 이 공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유리온실이자 커뮤니티 공간인 이곳은 사전 예약만 하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모임 공간입니다. 맞은 편의 도서열람실 역시 조용히 사색하며 머무를 수 있죠.

마찬가지로 지하의 씨알갤러리도 사람들의 손길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공간입니다. 기념관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합니다.

"너는 씨알이다. 너는 앞선 영원들의 총 결산이요, 뒤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 지난 긴 오천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생명은 순간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참 봄이 아니다. 정신으로 뚫어 직관하라."
<함석헌기념관>을 모두 둘러볼 즈음,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가 남긴 말이 떠올랐습니다. "죽었어도 영원을 사는 사람이 있다". 함석헌이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닐까요? 그의 정신은 죽어서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지금까지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