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원의 문학세계/수필. 에세이

함석헌(매일 만나는 철학자)

새벽풍경 2022. 6. 11. 17:13

매일 만나는 철학자 함석헌 선생

 

 

                                                                                                                                                     

매일 만나는 철학자 함석헌 선생.hwp
0.02MB

윤채원

 

 

한여름 뙤약볕이 지속되는 바람에 더위에 지친 사람이 늘어나고, 맹렬한 공격으로 쏟아내는 매미 울음소리가 소음으로 들리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한 절기 입추(立秋)가 시작되자 정말 거짓말처럼 더위도 한풀 꺾이고 매미소리도 점차 잠잠해지는 중이다. 지속되는 코로나 팬데믹도 한풀 꺾인 더위처럼 일상을 잠식당해 불안에 떠는 사람들 곁에서 점차 사그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함석헌 기념관은 우리나라의 독립과 민중의 인권, 비폭력 평화와 민주화 운동을 실천하셨던 함석헌 정신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공간이다.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코로나 19가 시작되던 2020년 초인 2월부터 휴관과 개관을 반복하며 기념관도 시대의 아픔과 시간을 함께 하는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격상으로 갑작스럽게 시작된 기념관의 휴관 지침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휴관이 지속되다가 사회적 거리 완화로 오랫동안 적막감에 묻혀있던 기념관이 사전예약제로 문을 열 수 있다는 소식은 더없이 반가웠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단어에 당황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 현실에 적응하려고 저마다 애쓰며 힘든 시간을 지내온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많은 것을 변화시킨 코로나 19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와 철학까지 바꾸며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듯하다.

20174월부터 함석헌 기념관의 직원이 된 나의 역할은 기념관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함석헌 선생의 씨알 정신과 사상, 그리고 생전 선생의 애국 및 민주화 활동을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역사문화공간인 기념관을 통해 지역민들과 교감하며 철학자, 사상가, 혁명가 함석헌을 알리는 일이다.

작년부터 시작되는 코로나 19 여파로 한동안 굳게 닫혔던 기념관의 문이 열리자마자 평범한 일상에 목말랐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다시 개관 여부를 묻는 전화 문의가 쏟아지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함석헌 기념관은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자 사상가로 비폭력 평화운동, 민주화운동을 실천하셨던 함석헌 선생이 말년을 보내신 곳이다. 190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47년 월남 이후 여러 곳을 거쳐 1956년부터 원효로 470번지에서 살면서 대중강연으로 독재정권과 대항하며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을 실천하셨다.

1901년에 태어나 1989년에 돌아가셨으니 우리나라의 지난한 고난의 역사를 몸으로 부딪치며 관통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아들 함우용이 거주하던 쌍문동 가옥으로 오셔서 마지막 여생을 보낸 쌍문동 집을 도봉구에서는 함석헌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기리기 위해 20159월 개관하였다. 또한 생전 선생의 독립운동과 애국 활동을 인정받아 202010월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함석헌 기념관은 철학자이자 사상가, 인권운동가인 선생의 사상과 흔적을 찾기 위해 매년 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는 곳이다. 많은 관람객과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던 기념관이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개관과 휴관이 지속되면서 덩달아 침묵의 시간도 길어졌다.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비대면 온라인 행사로 전환되니 전시실과 유리온실, 앞마당에 북적거리던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서러워지는 날도 많았다.

도봉구에서 30여 년째 거주하고 있지만, 사실 기념관이 생기기 전까지 나는 함석헌 선생이 이곳 쌍문동에서 여생을 보내며 사셨는지 모른 채 살아왔다.

 

2015년 가을, 개관행사를 돕기 위해 기념관을 방문할 당시에도 내가 훗날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로부터 16개월 후 근무지 이동으로 운명처럼 함석헌 기념관에 첫 출근하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 속의 글로만 만났던 함석헌 선생의 체취가 남아있는 공간으로 첫 출근하며 약간의 설렘과 낯선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전임자에게 업무인계를 받으며 이곳에 근무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개관 초기라 모든 것이 어수선했고 수시로 진행하는 시설 보수 공사로 시끄러웠지만,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전시실과 커뮤니티 공간, 유리온실을 천천히 살피며 공간과 친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폐관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고 오래도록 홀로 영상실에 앉아 관련 영상을 반복해 들으며 함석헌 선생님과 서서히 가까워졌고, 퇴근 후엔 집에서 함석헌 서적을 읽으며 선생님의 사상을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떼는 것이 감사했다. 매일 출근하면서 마치 살아계신 선생님을 만나는 것 같은 설렘으로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활짝 열린 대문을 통해 기념관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선생님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출근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연세 지긋한 할머니 두 분이 커피 한 박스를 들고 방문하셨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나에게 처음 보는 얼굴이라며 반색을 하셨다.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념관 근처에서 사는 어르신들로 오래전 당신들이 만났던 함석헌 선생에 대한 기억들을 들려주었다.

길게 늘어뜨린 수염에 흰색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버스정류장으로 바쁘게 나가시는 모습과 정성으로 화단의 꽃을 가꾸시는 생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셨다. 무지했던 당신들은 그저 화초를 좋아하는 어르신으로 알고 있었는데 돌아가신 지 25년이 훌쩍 지난 후 기념관이 생긴 것을 보고 남달라 보였던 그분이 역시 훌륭한 분이셨구나하고 생각하셨단다. 동네에 기념관이 생겨서 고마운 마음에 커피를 사 왔으니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대접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이후에도 자주 발걸음 하며 관람객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그 후 퇴근길에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렸더니 기념관이 자주 휴관이라 답답하다며 어서 빨리 대문이 활짝 열리기를 학수고대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기념관에 근무하면서 감사한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평화 사상가이신 함석헌의 철학을 조금씩이나마 알아갈 수 있고, 관람객들과 함께 그분의 사상과 훌륭한 정신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기념관 마당에는 원효로 시절 가꾸시던 것을 옮겨와 심은 보리수나무가 자라 그늘을 이루고 새들이 깃드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온실의 화초와 아담한 화단의 예쁜 꽃들은 마치 선생님이 손님을 맞이하듯 언제나 환하게 피어있다.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여러 동아리 모임을 위한 공간 대관과 시설 환경도 조금씩 바꿔나가니 찾아오는 관람객들도 많아지고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기념관이 있는 이곳 도봉구에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도봉산이 우뚝 솟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출퇴근 시 멀리 보이는 도봉산을 보면서 인권운동가, 독립운동가, 시인, 사상가 등 만물상으로 불리는 함석헌 선생님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사람들이 도봉산에 오르며 큰 에너지를 얻듯이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함석헌 선생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에 자주 찾아와 푸른 정신과 기상을 받고 돌아가길 기대해 본다.

 

함석헌 기념관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기획으로 지역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매년 4월에는 함석헌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나누기 위해 함석헌 사상강좌를 진행하며 씨알 정신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있다. 10월에는 무게감 있던 시로 현실참여를 하셨던 시인 함선헌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인문 교양강좌인 시월의 문학은 다양한 시인들을 초대해서 문학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작은 앞뜰에서는 정원음악회를 열어 시와 음악이 흐르는 시간도 갖고, 주차장 자리였던 곳을 씨ᄋᆞᆯ 갤러리로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가들에게 무료 대관함으로써 많은 사랑을 받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온 세계가 코로나 19를 앓고 있는 사이에 기념관도 어느새 개관 6주년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늘 북적거리던 관람객의 발걸음이 끊기자 우울한 마음이 시나브로 찾아들었다. 관람객과 함께하던 다양한 행사가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심리적 거리감이 더 깊어지고 의욕이 생기지 않아 안타깝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었다.

직접 대면할 수 없어 아쉬워하는 관람객을 위해 홈페이지에 온라인 전시관도 만들어 언제든지 기념관을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고, 소규모 모임이지만 함석헌 책모임과 낭송 모임도 진행하며 함석헌을 알리는 중이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조심스럽지만 굳게 닫혔던 기념관의 문이 활짝 열렸고, 반가움과 환대의 마음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말과 같이 사람은 역시 사람과 만나 온기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

기념관 뜰에는 국화가 활짝 피었고 앞마당에서는 모처럼 관람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행복하다. 극에 달했던 우리의 피로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우리 일상의 평화를 잠식시키는 코로나 19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 우울과 분노의 마음을 다스리며 기념관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왔던 관람객과 위로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함석헌 기념관에서는 현시대가 필요로 하는 함석헌의 사상과 철학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