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무를 심는 일(도봉문학)
나무를 심는 일
남 몰래 알고 알리지 않는 일, 혹은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우리는 ‘비밀’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겠기에 산비탈이 아닌 내면의 심연 속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벌써 삼십 년이 더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첫사랑이 없는 자는 구원 받지 못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당시 내 가슴에 심은 나무는 순수라는 열매가 열리는 첫사랑의 나무이다. 사랑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지극히 일방적인 감정이었지만 당시 내게는 버거움 가득한 해바라기 연가였다.
여고 입학식에서 처음 본 선생님의 모습에 사춘기 소녀의 순수한 설렘이 시작되었고 학창시절 삼년 동안 나의 시선을 온통 한 곳으로 머물고 그때부터 내 안에 나무 한 그루 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심어 둔 나무 덕분에 여러 가지로 흔들릴 수 있는 사춘기 시절에도 나는 한 곳만 바라보고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선생님을 향한 소중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예쁘게 분필을 포장하거나 이른 아침 몰래 교무실에 들어가 책상에 들꽃을 꽂아 두는 일, 그리고 그 선생님 과목에 집중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 때 그 시절은 지금처럼 학생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매체도 다양하지 않아서 여고생의 시선을 잡는 일은 학교라는 테두리 안의 것이 전부였다. 물론 몇 몇의 친구들은 몰래 남학생들과 미팅을 하거나 교제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춘기가 막 시작된 또래의 여고생들이 나름의 사연을 만들어 마음에 담고 있는 남자 선생님의 존재는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중 하나는 여고시절 나의 연적이었다가 후에 절친한 친구가 된 경우다. 그렇게 애를 태우며 삼년을 보냈지만 선생님이 나의 두근거리는 설렘을 눈치 채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하다. 졸업 후 안부가 궁금하고 그리움은 여전했는데 설렘이 너무 크기에 차마 찾아가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그 나무는 자라 어느새 큰 그늘을 만들어 놓았고 세월이 주는 용기로 고향 근처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 선생님께 안부도 물을 겸 만남을 청하는 전화를 드렸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 귀에 들리는 그 분의 목소리는 여전히 예전처럼 활기차고 힘이 실려 있어 반가움이 더했다. 막상 삼십 년 그리움 끝에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지만 콩닥거림의 울림으로 밤새 뒤척거리다 새벽을 맞이했다. 아직도 그 날 그 만남을 생각하면 여전히 전율이 밀려든다.
삼십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우린 이미 익숙한 듯 악수를 나눴고 식사를 하며 각자 살아 온 날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사실 그 만남을 위해 나는 온종일의 시간을 비워 두었다. 스쳐 지나간 시간이 길었던 만큼 할 이야기가 무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아랑곳 않고 3시간 30분 만에 돌려보내는 선생님에게 서운한 마음이 파도의 너울처럼 밀려들었다.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이나 묻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많았는데 다 내려놓지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더 아쉽고 헛헛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움의 대상자였던 선생님 입장에서는 옛 제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만남이 내겐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정말 바쁜 일이 있으셨는지 아니면 여고시절 내내 선생님을 좋아했었다는 뒤늦은 고백에 당황하셨던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반가운 마음으로 긴장하며 선생님과 마주한 3시간 30분은 너무 짧았지만 여전히 활기가 넘치고 성실하신 모습이어서 감사했다.
중년이란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전후좌우를 살필 수 있는 연륜과 능력이 두루 생길 수 있는 나이로 젊어서는 눈으로 보고 나이 들어서는 마음으로 본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선생님이 허락해준다면 이따금 길이 보이지 않거나 방법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잠시 멈춰 길을 물을 수 있는 상대가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곧 있을 퇴직을 준비하며 제 2의 인생을 위해 구상중이라는 새로운 일이 은근 기대가 되고 궁금해진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에는 정해진 나이는 없고 하나를 갈무리한 후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스며 든 풍성한 감성의 몇 할은 아마도 여고시절 선생님을 향한 순수했던 마음이 만들어 낸 것들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설렘도 점차 잦아들고 나의 일상도 제자리로 찾아들었다.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 마음에 나무를 심어 두길 정말 잘 한 것 같다. 그 나무는 때때로 내 삶속에서 가치의 잣대가 되어주었고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마음에 나무를 심고 두근두근 설레며 살아 온 날들이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복하게 고백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비밀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라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비밀, 상대와 내가 공감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난 나무 심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선한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선물로 주었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나무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