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인연
윤채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홀로 살아가기 힘든 인간의 존재를 표현한 것으로 더불어 마음을 공유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상대에게 익숙하고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일지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흐릿한 구름 사이로 봄 햇살이 뻗어 나오는 것처럼 당당한 기세를 갖추지 않으면 단단해 보이는 그 관계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취향으로 세밀하게 관찰한 후 선택한 사람과의 관계도 조율하지 못해 헤어짐이 난무하는 세대에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세 남자와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난 무소의 뿔처럼 단단한 여자라 할 수 있다. 행복과 버거움이 공존하는 이 달콤쌉싸래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끔씩 미끼를 이용한다.
대형할인점이나 슈퍼마켓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끼워주기, 스티커, 포인트 카드나 하나를 덤으로 주는 1+1 등 방법은 다양하다. 사실 마케팅의 일종이지만 속임수 같다는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공짜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어 자주 그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나와 동거하는 세 남자는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신제품이 출시되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먼저 사고 싶은 욕구가 강해 꼭 실천에 옮겨 나를 긴장시키는 얼리 어댑터(early adopeters)족이라 마케팅에서 통용되는 미끼랑은 거리가 먼 쪽이다. 그런 그에게도 어김없이 낚이는 미끼가 있으니 바로 애정이 가득담긴 휴대폰 문자나 이메일, 또는 좋아하는 책을 선물해 주는 것이다.
소심함의 대표주자인 큰 아이는 겁이 많고 여리기만해서 미끼에 걸려든 것들도 제대로 못 챙기거니와 제 밥그릇에도 도통 관심이 없다. 뭐든지 없으면 말지라는 생각뿐인 듯 제 주머니에 넣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없어 바라보기도 답답한 노릇이다.
반면 막내 녀석은 누구를 닮았는지 필요이상 욕심도 많고 스스로 미끼를 만들기도 한다. 특히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학교에서 시험이라도 본 날엔 모든 과목을 100점 받았다며 평소 갖고 싶었던 것들을 요구한다. 기특한 마음에 확인도 않고 사주고 나면 며칠 후엔 꼭 몇 문제는 틀린 시험지를 내밀곤 한다. 매번 속으면서도 당당하고 확신에 찬 눈빛과 말투 때문인지 번번이 믿게 된다. 공부 잘하길 바라는 부모 심중을 이용당하는 것 같아 뿌연 안개 속을 들어간 듯 머릿속이 멍해진다.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녀석은 “엄마는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거예요” 라며 미묘한 미소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질 뿐이다.
서로 다른 네 사람이 함께 살다보면 가족애를 넘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애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나와 다른 남자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지거나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익숙한 듯 별 문제없이 살아 온 그들이 때때로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서먹함이 싫어 내 마음대로 짜 맞춘 틀에 남편을 가두려다 마음 다칠 때도 있었고 각기 다름 성향의 아이들을 받아주지 못하고 내 소유물로 생각해 그들을 지치게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중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롬은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오랜 배움과 연습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사랑과 배려를 가지고 시간이 주는 익숙함을 견뎌 내야하는 법이다.
상대를 통해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 생각한다.
가족이란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었다가 서로의 이끌림으로 하나가 되어 사랑을 기초로세운 아름다운 인연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힘겨운 동거를 거치고 나면 단단한 사랑의 초석이 된다. 아낌없는 배려와 나눔이 이루어낸 사랑이라도 소홀히 대하면 언제든 도망치려 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깨워 서툴고 낯선 동거를 지켜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