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뢰하는 감독 이창동이 만든 영화 <시>를 보았다.
첫 장면이 무심하게 흐르기만 하는 강물로 시작하는 영화 <시>는 2시간 19분의 상영시간동안,
관객들의 기침소리와 숨소리조차 들리지않고 관객의 호흡을 빨아들인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의 5번째 영화로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그렸던 감독의 통찰력에 인격과 예술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참 섬세한 영화이다.
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주제의식이 무거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곁에서 흘러가는 삶을 아무런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시를 배우는 주인공 미자가 시 강사에게 " 시는 정말 어려워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곧 "인생은 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는 단순히 시일수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치나 정신일수도 있겠다.
우리 주변의 무엇이든 그 본질을 들려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시는 고통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다" 라는 대사가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가 끝났지만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상영내내 홀로있는 듯한 공간의 정적이 쉽게 깨어지지않았다.
시는 영상과 달라서 감동이 더디 오기때문에 잘 읽히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는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려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시 <아네스의 노래>가 낭송되던 그 부분이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왜 거기서 그분이 떠올랐을까. 그분의 마지막 길이 왜 생각났는지...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해져서 자리에서 일어 설 수가 없었는지.
어찌되었든...
세상의 기억을 삼키고 강물이 흘러가는 엔딩부분이 한동안 내 안에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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